한장남은 마지막 달력



한 장 남은 달력이 

바람에 흔들린다 


달력을 잡으니 가슴이 휑해진다 

겨울은 철저히 고독해지는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12월의 하얀 커튼을 제치며 

차분하게 고운 흔적 

하나 찍는다 


온전한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보며 

내가 걸어온 한 해를 

반추하며 보듬고 싶고 


별 탈 없이 살아와줘서 

고맙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면서 

12월을 보내련다


새해의 새로운 포부와 

꿈꾸었던 소망이 벌써 어디로 

달음박질친 건지 

찾을 수가 없다 


오래 전의 관습과 

익숙하고 고루한 


예전의 관례대로 

살고 있는 자신이 

문득 낯설다 


너무나 편해서 남루해도 

좋다는 제자리걸음의 늘어진 

사고력이 진저리 나지만 


안심이 되는 건 어떤 회유인가.




잡힐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은

꿈의 테두리만 맴도는 바람


놓아주고 싶은 시간의 섬엔

유유히 떠다니는 가냘푸고

서러운 점 하나 누군가를 

추억한다는 건 한 줌의 흩어짐과

한 줌의 샘솟음


겨울비가 운치 있게 내리고

첼로 선율이 잔잔히 스며들고


향으로 들이키는 차 한잔이

있으니 오늘만큼은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오늘만큼은 젖어들고 싶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허물인지

아니 오늘만큼은 미치고 싶다

무엇엔가 사랑이든 문학이든

열정이 남아있을 때 오늘만큼은

흡수되어 어우러지고 싶다



어둠이 둔탁한 통증으로

내려앉기 시작할 즘이면

바람도 일기 시작한다


전신주의 거미줄이 흔들린다

내 안의 허무도 함께 흔들린다


어디에나 깃들 수 있는

바람의 도도한 흐름에

긴 겨울의 하루도 이렇게

허기저 간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만으로

세상을 잊기에 충분합니다

당신이 즐 그립긴 하지만

그립다는 그 말 한마디로

표현되기엔 내 마음이

무언가 허전합니다


하루살이 같은 절박한

그리움은 되길 싫은 까닭입니다

때론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더 아름다울 수가 있나 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