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댄 봄비를

빗소리에 잠을 깨니
미지의 세계에 초대받은
느낌이 든다
베토벤의 전원이 어울리는
신비한 아침이다

이런 날은 기본만 대충 챙기고
서성 거리게 된다
추억과 현실 속을 살짝 훅 하고
스치는 신성한 기운이 잊고 싶은
기억들과 잊기엔 너무 아쉬웠던
추억 파편들을 한 조각씩
커피 잔속에 넣어서 마시게 한다
오늘은 이름하여 추억 커피

결혼과 동시에 영영 이별이
되어버린 희야가 그립다
오늘은 무지무지 비 오는 날이면
약속도 없이 그곳에서
어김없이 마주했던
커피숍 하얀 집

세상이 널 빛나게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세상을 빛나게 한다고
기분 좋게 말해 주던 그녀
지금은 둘 다 주부란 이름의
불혹 즈음의 여인이지만

미소가 하얀 싱그런 소녀로
남아 있으리라
영원히 베토벤을 사랑했던
그 소녀로

 


하늘이여
슬픔을 삼키느라
무던히도 애를 쓰더니
결국 이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더이까

그대가 이리 쉽게 무너져 버리면
난 어찌하라고
그대마저 슬픔의 대상이 된다면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그러니 내게 만큼은 우수 속
기쁨으로 내려주오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슬픈 이유는
비가 와서가 아니라오
이젠 잊었노라 그랬노라
확신했건만 어김없이
빗물은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한 사람을 영원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그 기억마저 이젠 슬슬함이기
때문이라오

비 오는 날은 비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좋다

빗소릴 듣고 있노라면
살아 있음이 아름답게
전해 지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근사한 선율이 흘렀을 때
그 곡이 끝날 때까지
마비되어 버린 듯 멈춰서
있었던 그때의 느낌처럼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던
생각들은 갈색 우산 속으로
모여든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인만큼
비 오는 날은 많은걸 추억케 한다

소학교 시절 지지리도 가난해서
자기 우산 없어 내 우산을
같이 쓰고 등교해야 했던
비 오늘날은 죽기보다 
싫다던 지금은 별이 되어버린
금이가 문득 스친다

그래서인지 불혹이 다된 지금도
혼자 우산을 쓰면 금이의
빈자리가 느껴서인지
이유 없이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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