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
가운데 스무 번째 절기 소설

작년엔 이맘때쯤 약간의 눈발이
날린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바람만 차고

눈 소식은 없다

첫눈은 하늘에서 보낸
순백의 고귀한 선물
바라보는 것만도
누구나 설렘주의보

잠자던 핸드폰도
첫눈 소식을 알리느라
카톡 카톡

살아가는 일은
이렇게 정을 나누고
기쁨을 공유하는 일일 텐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시린 아침

당신이 시린 창가에서
마지막 갈색 눈물을
처절하게 흘려놓은
을씨년스러운 아침

옷깃을 여미며 초연히
또 다른 계절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11월의 오후

바람이 닿기만 해도
낙엽이 되어버릴
이파리들의 여린 떨림이
17시를 흔들고

인생 가을 녘에 보내야 하는
늦가을의 쓸쓸함도
차분히 저물어간다


11월이 12월에게

영원히 함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단 한 번도 당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떠나가고
둘만 남고 보니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30일뿐이고
매일매일 누군가와는
작별을 해야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 없이 사랑하겠습니다

따스한 날

창문을 열어도 좋을
적당히 상쾌한 바람과
보드라운 햇살이

사랑하는 사람의
포근한 품 같은
아늑함을 부여한다

따뜻한 목티를 입고
바람막이 자킷을 걸치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벚나무 가로수 길을 걷는데
자꾸만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몇 겹으로 껴입은 나 자신이
벚나무보다 더 벌거벗은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끝자락에서

한 장 남은 달력 속으로
숨어버린 쫄깃했던 다짐들

기억을 주우면
아쉬움이 산이 된다

세월이 발목을 잡으니
구차한 변명들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빈틈이 때로는
자신을 더 촘촘하게도
만든다는 걸 믿고 싶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한 번쯤 곱씹어 보게 되는
한 해 끝자락에서

정직한 나를 만난다는 사실은
때로는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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