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을 닮고 싶다

예전에는 가을 하늘을 닮은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너무 맑아서
속내가 다 보여지는
손끝만 닿아도 푸르름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투명한 사람
 
지금은  고향 바다를 닮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계절마다 같은 빛깔인 듯 하지만
조금씩 다른 색으로
비릿하고 알싸한 이끌림과
가슴엔 오만가지 아픔을 안고도
의연할 수 있는
그 여유를 그 아늑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길이 보인다고
가르침을 주시지만
 
비우면 비울수록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길 아닌 길이 보이고
나 아닌 나를 만난다
 
등 뒤에 부서지는 햇살의
의미가 무언지
 
채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 가는
꽃잎의 의미가 무언지
 
지나간 시간들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법이 무언지 
 

5월은 말한다
봄을 밟고 지나가는 이에게

몇 방울의 떨어진 콧등의 땀방울
그 뒤에 전해져 오는 커피 향
그 쓴듯단듯한 묘한 맛에서
인생을 배운다

몸이 아파야만 맘이 견뎌내는
슬픈 지천명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삶은 살아지는 거란다 라고

 

나와는 전혀 무관한
타인에게서 문득
나를 느낄 때
묘한 설렘이 있다
 
이유 없는 친근함과
 공감대가 형성된다
 
원리원칙대로 따지고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한 타인에게서
나를 느낄 땐
 
피곤하게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위로주 한잔 사주고 싶다
 
슬픈 선율에 젖어서
벅찬 감동의 여운 속에서
나를 느낄 땐
 
감성톤 비슷한 그에게
 헤즐럿 한잔 건네고 싶다.

 

 

우리 그이는 언제나
날 보고 웃는다
 
웃지 않을 땐 긴장한다
화가 났을 때라든가
몸이 안 좋을 때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응석이라도 부리려고
입을 떼려다 만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기운이 없는 그이를 보니
힘이 빠진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일만 했단다
 
배고픈 걸 모르는 사람
화가 나서 나오는 대로
잔소리를 해대니
그제서야 웃는다
 
이제야 우리 그이 같다
그래서 안심이 된다
 
우리 그이는 집중력이 대단하다
한 곳에 꽂히면 다른 생각은 못한다
 
요즘은 뉴에이지에 빠져서
눈만 뜨면 감을 때까지 음악 감상 중
 
그래서 가끔 염려가 된다
내가 아닌 다른 여인의 향기에
취해서 정신 못 차릴까 봐

 

우리 그이는 전형적인
충청도 남자
 
점잖고 느림의 미학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
 
지금은 여유와 배려심으로
다가온다
 
우리 그이는 아기자기하고
가슴 따스한 사람
 
동물 애호가이며
화초 가꾸기를
좋아한다
 
이년생 금붕어 여섯 마리
오 년생 기니피그 영숙이
행복나무 화이트 벤자민
애기사과나무 기타 등등
 
눈만 뜨면
그 애들이랑
아침 인사하기 바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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