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사랑스럽다

여름 내내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들이 내는 집합음 소리에서도

맑고 시리도록 눈부신 하늘
결에서도 시나브로 다가서는
가을빛이 이쁘다

소매 깃 사이로 겨드랑이 사이로
살살 간지럼 태우는 산들바람은
설레게 하고

마지막 자아성찰을 하는
늦여름 뒤에서 살며시 미소 짓는
가을은 사랑스럽다



출근길에 아파트 계단을 나서는데
느닷없이 가슴을 휘감는 신선한
기운에 잠시 일상이 멈춘다

남천 이파리들도 반가움에 나붓나붓
얼마나 그리웠던가

버텨야 했던 숱한 날들의
아픔들까지도 잊겠노라고

 

 


가을이여
당신이 함께 해준다면

더 많은 날들을
힘겨워해야 한다고 해도 환하게
웃을 수 있으리라

가을 속에서 가장 고독한 눈빛으로
한 편의 시를 쓰고 싶다

흔들리고 싶어요 바람아 내게로
어서 와 줘요 정지된 화면은
너무 삭막해요 춤추고 싶어요
바람아 내게로 어서 와 줘요

햇살만 먹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건조한 대지 위에
한줄기 소나기를 어서 보내주세요

갈라져서 밑바닥까지 다 보여줬건만
얼마나 더 견뎌야 좋은 날이
오려는 지요

 

 

가을은 바람이 불면 바람이
좋아라 하고 햇살이 고우면 햇살이
좋아라 하더니

성급한 잎새 하나가 사랑에 빠져서
심장을 빨갛게 물들였네요

가을은 혼자서 도드라짐은
결코 빛남이 아님을 왜 모를까요

고지식한 잎새 하나는
절대로 물들지 않을 거라고
자기 색만 고집하고 있네요

서로 어우러짐의 조화가 완벽한
아름다움을 탄생시킴을 언제쯤
깨닫게 될는지요 함께 어울리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보랏빛 쑥부쟁이

높푸른 가을 하늘 아래
보랏빛 쑥부쟁이가

그리움으로 곱게 피어나
하늘거리며 님 바라기 하는가

초록 초록한 이파리 틈새로
하나 둘 갈빛으로

물든 예민한 잎새는
준비 없는 이별을 예고한다

가을은 때때로
말없이 떠나는 법에
익숙해지게 한다

스치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애틋한 눈빛을 담아서
진지하고 정겹게

바라보고 싶다

 


가을사랑

사랑은
차마 말 못 하는 마음이
더 아름다운 거라고

사랑은
사랑을 위해
그냥 그렇게 잊는 거라고

사랑이란
해거름의 진홍빛
노을 같은 것일지라도

현기증 날 만큼
눈빛 고운 사람을 만나
넋을 잃고 싶다

꽃잎 진 벚나무 아래서
발 끝에 뚝뚝 떨어지는
잎새 하나에도 으스러진다

낙엽 하나

창가를 서성이다
갈 곳이 없는

체념 같은 그리움
가을비로 스민다

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로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하는

절절한 사연들이
낙엽 되어 바스러진다

누군가의 발 밑에서
처절한 유언을 남기고

은밀하게 잊혀지리라
죽은 옛시 간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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