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가을 하늘

눈이 부시게 푸르르고
가슴 시리게 맑다

이런 날 가을운동회 하면
정말 좋겠다

이런 날 그리운 이름을
맑은 하늘에 전하고 싶다

내겐 그리운 이름이 너무 많다
그 사실이 더 가슴 시리게 한다

보고 싶다는 네 글자와
그립다는 세 글자를 써 본다

그리움이 푸르름 되어
가슴에 뚝뚝 떨어진다

아 가을은 벌써 이렇게
아린 이름으로 내게 오는가

 

일 년 수확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포도밭

그아래 다소곳이 고개 숙인
벼이삭들이 여유롭다

팔월 한가위는
코앞에 다가오고

단풍은 설악산부터
곱게 물들어서
내려오고 있다

하늘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널뛰기를 한다

내 맘도 맑았다 흐렸다
널뛰기를 한다

9월은 참 소란스럽고
분주하다

 

햇살 좋은 어느 늦가을에
고운 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받은 선물이라 가슴이 벅찼다

그녀의 세심하고 자상함이
향기롭고 따스하게 전해져 온다

오랜만에 시집을 가슴에 꼭 안고
천천히 천천히 집으로 돌아간다

시집 속의 한 편의 시가 되어
시집 속의 하나의 삽화가 되어

어떤 시는 그리움으로
어떤 시는 부러움으로
가슴에 물보라를 일으킨다

나는 언제쯤 이렇게 절절한
시를 쓸 수 있을까

여유 있게 처신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음을 반성합니다

나보다 남을 더 배려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음을 반성합니다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
고운 향이 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음을 반성합니다

남의 아픔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음을 반성합니다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임이 생각보다 앞설 때가
더 많음을 반성합니다

사랑은 강하게 하기도
약하게 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모든 걸 갖게도
모든 걸 앗아가기도 합니다

사랑은 자유롭기가 어렵습니다
자꾸만 집착하게 만듭니다

사랑이란 미명 아래 모든 것이
용서되지는 않습니다

사랑이란 맹목적이 만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사랑 때문에 나를 망가뜨리지도
나를 파괴시키지도 마십시오

사랑으로 거듭나고
사랑 때문에 빛나 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누군가 자꾸 쳐다봅니다
부끄러워 땅만 보고 걷습니다

누군가 자꾸 따라옵니다
궁금해서 살며시 뒤돌아봅니다

오랜만에 보는 달님이여

부족한 듯 모자란 듯
덜 찬 보름달이
마음을 앗아갑니다

보름달을 그리다가
미완성된 듯한 그 어눌함이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귀뚜라미 떼들은 밤새도록
사랑 구애하느라
지칠 줄을 모르고

달빛이 쏟아질 것 같은
초연한 가을밤도
소리 없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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