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린다
건조한 대지를
적시기엔 부족하지만

오랜만에 축축한
습기를 느끼며

더욱 쌀쌀해질 것을
미리 걱정한다

언제부턴가 식사 후엔
습관처럼 마셔대는
일회용 커피 향을
음미한다

틈을 비집고
가끔씩 늘어놓는
넋두리들이
비꽃이 된다

추억이라는 노란
책갈피 속에선

떠났든 떠나보냈든
그런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추억이라는 노란
책갈피 속에선

누가 더 많이 사랑했는지
누가 덜 사랑했는지
그런 사실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때 그 시절의
진지했었고 소중했었던
애틋하고 아련한

느낌 하나만으로 아름답게
추억할만한 건 아닐까 한다

오늘 이 시간도 조금 후면
내일이라는 과거가 된다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의 나를
아름답게 가꾸자

비를 미치게 사랑하지만
비가 오면 우리님 생각에
염려가 됩니다

혹여 비에 흠씬 젖어서
감기에나 안 걸릴까
하는 노파심에서

태양을 미치게 사모하지만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 서면
우리님 생각에 염려가 됩니다

혹여 태양의 노예가 되어
더위나 먹지 않으려나
하는 노파심에서

눈을 미치게 동경하지만
눈 오는 거리에 나서면
우리님 생각에 염려가 됩니다

혹여 내일 아침 길이 미끄러워
넘어지지나 않으려나
하는 노파심에서



살기 좋은 세상이다
우리는 많은 문화적 혜택을 받고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

많이 더운들 어떠하리
많이 추운 들 어떠하리

점점 편해지니 감사하는
마음마저 사라져 가는 건 아닌지

누림이 당연하고
받음이 당연한 시대려나

참을 수 있고 견딜만한데도
참지 않고 견디지 않는 시대려나

밤새 돌던 선풍기 날개가
아침이면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윙윙 파리 소리를 낸다

세상도 멍해지고
내 머릿속도 멍해진다

이렇게 여름날은 깊어간다
우리 인생도 속절없이 깊어간다


 


오랜만에 읽다만 책을 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진다 

덜거덕 덜거덕 소리를 내며
기차가 여유로운 한나절을 가른다

언제나 기차소린 운치 있다
기차 따라가며 괴성 지르는
선머슴애들이 보이는 듯도 하다

창밖을 보며 앉아서 무료한 듯

꼰들꼰들 졸고 있는 기니피그가
너무 귀엽다

누가 우리 층에 온 건지
탁탁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닫혔다 한다

아까운 휴가가 소리 없이 흘러간다
그동안 못했던 생각 속의 달팽이나
마음껏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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