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가을비가 사람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장렬히 내리치는 비가
소원해 지길 바라며

비가 주는 운치에 젖어들며
추억에 잠겨봅니다

비가 그치면 접어두어야 할
빛바랜 추억의 한 자락 끝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시간의 뒤태는 언제나
그리움의 빛깔입니다

첫사랑 같은 알싸함이
들뜨게 합니다

 


소낙비가 가랑비가 되어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차창밖으로 스산한 가을바람이
울고 있습니다

하나둘 떨어져 뒹구는
나뭇잎들을 밟고 지나가는
발 자욱이 처량합니다

시들어가는 꽃일지라도
고운 꽃을 보면
다시 피어나고 싶고

저물어가는 황혼 길이라도
눈멀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다

루드베키아가 활짝 핀
길가를 걸으면
작년 이맘때쯤

아버님 뵈러 가던
그 언덕배기가
무지 그리워지고

가을비 꽃그림처럼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맨발로 거리에 선다

첫 마음

첫 마음을 안고
희망차게 새 커튼을
활짝 열어봅니다

늘 맞이하는 아침의 햇살도
처음 맞는 것 같은
눈부심에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숨을 쉬면서
내발로 튼튼히
설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한 살 더 먹고 보니
새삼 느껴집니다

원대한 꿈을 펼쳐나가기보단
내 안의 나를 사랑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살뜰한 정을 베풀며

따스하고 정겨운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기다림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소중합니다

밤바람 위로
올려다보는 하늘엔

헤아리기 좋을 만큼의
별들이 총총합니다

별이 있어도
하늘은 너무 깜깜합니다

그리움이 빛을
잃어가나 봅니다

자꾸만 서러운 생각에
울컥 명치끝이 시려옵니다

공허한 여름밤은
속절없이 깊어갑니다

고운 친구에게

소슬한 가을밤이지만
마음이 따스하구려

가까운 곳에서
가슴이 허할 때면

언제라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어릴 적 고운 친구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든든하고 커다란
위안이 되구려

상대방을 배려하는
넉넉함과 여유로움으로

성실히 살아가는 밝은 미소가
얼마나 눈부신지
그대는 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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