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속 기차여행

 

가을비가 사람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장렬히 내리치는 비가
소원해 지길 바라며

비가 주는 운치에 젖어들며
추억에 잠겨봅니다

비가 그치면 접어두어야 할
빛바랜 추억의 한 자락 끝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시간의 뒤태는 언제나
그리움의 빛깔입니다

첫사랑 같은 알싸함이
들뜨게 합니다

소낙비가 가랑비가 되어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차창밖으로 스산한 가을바람이
울고 있습니다

하나둘 떨어져 뒹구는
나뭇잎들을 밟고 지나가는
발 자욱이 처량합니다

시들어가는 꽃일지라도
고운 꽃을 보면
다시 피어나고 싶고

저물어가는 황혼 길이라도
눈멀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다

루드베키아가 활짝 핀
길가를 걸으면
작년 이맘때쯤

아버님 뵈러 가던
그 언덕배기가
무지 그리워지고

가을비 꽃그림처럼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맨발로 거리에 선다

 

 

가을비 속에 기차여행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다

지는 것도 서러운데
갈 길을 재촉하는

가을비는 꽃들에게는
보랏빛 눈물이 되리라

화려한 시절엔
누구에게나 눈길을
넘치게 받지만

떠나는 길은
누구나 공평하게도
초라하기 그지없어라

바라보는 것만도 아픔이 되기에
조용히 담담히 떠나가 주기만을
바랄 뿐이던가

유리창을 통해 흩뿌려지는
물방울이 원하는 만큼 안겨다
주듯 익숙한 듯 낯익다

때로는 떠날 때
아름답게 떠나 줌으로

두루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선물이 된다는 걸

겸손함이 단단한
바위도 깰 수 있다는 걸

바람이 꽃을 더듬듯
존재만으로 기쁨이라는 걸
가을을 통해 배운다

 

 



불안한 예감

가을에 홀로 떠나는
기차여행은 충분히
들뜨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혼자만의 시간이라

설렘을 넘어 약간의
두려움마저 엄습했다

기차에 몸을 싣고
기다리는 예약된

내 자리를 찾았더니
누군가 자리하고 있다

순간 스치는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앞 기차를 타 버린 것이다

예약된 내 자리는
빈자리로 비워두고

나는 남의 자리에
어색하게 앉아서

스치는 창밖 가을 풍경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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