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과 루드베키아

 

백일홍은 이어달리기로
하나둘씩 꽃을 피웠듯이
질서 정연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


루드베키아는 늦더위에 지친 듯 허덕이며
꽃잎을 축 늘어뜨리고
애처롭게 졸고 있다

잠을 설친 탓으로 연신 하품을 해대는
나랑 닮은 듯하다

들쑥날쑥 자라난 키 작은 풀들은
조그만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며
흔들거려줌도 고맙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힘든 계
절인 듯하다


꽃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고운 자태에
손길은 주지 못하고 몰래 눈빛에만
꽃물을 훔친다

난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단아함에
고고함에 기가 꺾여 젖은 수건으로
난을 치고 있다

파랑새를 보고 있노라면 희망과
이상을 싣고 꿈의 나래를 활짝

본다

 


 

여름날

따가운 햇살 한가운데 섬처럼 서 있는
창백한 슬픈 사람들

여름 숲의 울창함으로
격정을 인내하고 지금은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그리울 뿐임을

얄팍한 시간들이 차가운 향기로
날린다

삶의 언저리에서 바람 끝자락이라도
질척거리며 잡고 싶다

여름날은 왜 이리 허기가 지는지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마음

마음이 가더라도 애써 무심한 척
마음을 꼬깃꼬깃 접어두어야 할
때가 있다

받는 쪽이나 주는 쪽이나
부담스럽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힘들 때는 기댈 수 있는
어깨라도 가벼이 건넬 수 있으면
좋겠고 상대방이 지쳐서 땅에
주저앉고 싶을 때는 따스한 손 하나
내밀어 준다면 좋겠다

푸념하며 보내는 하루는 길기만
하지만 땀 흘리며 보내는 하루는
그리 길지는 않다

한낮의 뜨거운 기온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가만히 불어주는
산뜻한 초록바람은 땀으로 얼룩진

몸과 마음을 기분 좋게 토닥여준다
여유로운 초저녁 산책은

 

여름날을 아름답고
근사한 계절로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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