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의 아픔

어중간한 둘째 딸로 태어난 건 그리
축복받은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덩치 큰 언니가 입던
교복을 물려 입어야 하는
설움도 감내해야 했고

헌 옷과 낡은 책들이
익숙한 인생을 살아야 했으니

아무리 착한 동생이라도
시기심이 안 생겨난다면
이상한 게 아닐까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온 건 아닐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상도
많이 하며 살았었는데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유언 같은 말씀이 이렇게
가슴 저리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딸로 태어나서
그것도 둘째 딸로 태어나서
이 모양 이 꼴일까

원망은 원망을 낳고
내 마음은 지옥이었고
억새풀밭이었다

어느 날 불현듯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샘솟았다

살아있음에 우선 감사하고
백치가 아니어서 더 감사한다

나는 그대로 나이건만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꾼 것뿐인데

세상이 달라 보였다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는 이방인이 아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인 것이다

 


세상을 습기가 스멀스멀 침범해
습기로 가득 찬 유리창은
버리면 언제나 투명한 척

남의 마음만 들여다봐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유리창도 함께 운다

오늘만큼은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안도의 한숨을
뿌옇게 토해낸다

살아가는 일은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이고 소리 없이 격려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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