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불쾌지수가 엄청 높다
날씨 탓인가
잠을 설친 탓인가

말을 아낀다
내 마음은 판도라 상자
알 수가 없다

아직 멀었다
반생 동안 뭘 배우고
뭘 터득했던가

나하나 감추는 법을 모르니
남들은 잘도 포장하고 살던걸

그 쉬운 일이 내겐 무지 어렵다

열심히만 할 줄 알지
타협할 줄을 모른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이
바벨탑이 되어 그대로
무너지게 할 순 없다


하늘은 저리도 거만하게 푸르고
맑아도 되는 걸까

얼굴은 벌겋게 익어가고
가슴은 다 타 버려서
재만 남길 요량인가

여름이 가장 여름다운 것뿐인데
누굴 탓할까만은 여름날은 나른하고
지루하게 잔인하다

다음 주에 있을 여름휴가만 손꼽아
기다려 보지만 그 후엔 또 무엇으로
허기를 채워야 하나


먼 그리움

살아내기 위해 잊어야 했던
기억들 그리워 못 견딜
애타는 밤이면 담벼락 아래서
꼬깃꼬깃한 그리움
하나 불쑥 튀어나온다

목이 긴 슬픔을 꽃으로 피워낸
상사화 지는 날이면 가슴으로 운다 

나 자신이 무섭다 

겸손한 척하는데 아주 능숙해져
버렸다 스스로도 그리 믿고
살아갈 만큼 어리석다

교만이 자꾸 고개를 드는 지도
모르고 슬픈 모노드라마를
찍고 있다

내 속의 꼬인 창자를 다 드러내
보여준다면 아마도 난 철저히
고독해질지도 모른다

혼자 남겨진다면 이제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길들여져
버렸기에 나 자신이 가끔씩은
나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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