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암암한 마음 달래려고
찾은 고향은
예전의 고향은 아니다

부모님은 꽃상여 타고
먼길 떠나셨고

흰머리 무성한
중년의 여인은

홀로 나들목에 서서
함초롬히 다가서는
비릿한 바다향기에

마음이 허우룩하고
세월의 눈시울이 젖는다

사립문을 열면
하늘빛 수국 한 송이와
댓돌 위의 하얀 고무신은

주인 없는 빈자리를
곰살갑게 지키고

등나무 넝쿨은
유년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서

보랏빛 그리움을 꽃피우며
꿋꿋하게 인연의 약속을 엮는다.

 

무너져 버린 벽돌담 기와지붕 틈
사이로 비가 스며들어서
엉망이 되어버린 안방

빨래집게에 집혀 있는 빛바랜
영수증들 주인을 잃어버린
멈춰버린 시계들

엄마의 손길이 남아 있는
장독대들 아직도 엄마의 향기가
이렇게 느껴지는데

쓸쓸함과 그리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데 이제는 이곳도
수명을 다해서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하나 봅니다.

 


꽃가루 입술에 곱게 묻히고
입맞춤하는 바람의 유혹이
너무도 살인적이다

오늘만큼은 그냥 이대로
바람 속으로 주저 않고 싶다
아니
버티고 서있을 여력이 없다

빈 가슴이란 게 이렇게
휑한 걸까

오늘만큼은 내가 누굴 위해
존재한 다기보단
날 위해 존재해줄 누군가가
그립다

단 하루라도 아니 누구라도 좋다
넉넉한 미소로 팔 벌린다면
그냥 안겨버릴 것 같다
위험한 발상 우울의 극치

노을빛 빈집에 허무만이
춤춘다.

세상 밖에서 가끔은
세상 안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으로 살아갈 때가 있다

나도 낯선 타인들과 비껴가면서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생각 속 생각을 해 본다

아마도 타인의 시선보다
내 시선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

잠시 운둔자가 되고 싶다
이런 날은 잠시 방관자가
되어본다
남의 인생을 관람하듯

세상 안에서 가끔은 세상과
격리 수용된 느낌으로
살아갈 때가 있다

악성 바이러스 보균자 라도
된 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유가 두려운 공황장애인 듯
어중간한 무늬의 회색분자인 듯

이런 날은 슬픔을 세상에
전염시킬 것 만 같은 두려움에
멍한 하루를 보낸다


창 밖 풍경이 창 안 온기까지
서늘하게 만들어
움츠러들게 한다
스산한 바람 떨어지는 낙엽
가슴까지 갈바람에
너덜너덜해진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인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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