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즐거움

 

차를 타고
지나던 그 길을
오늘은 천천히
되짚으며 걷는다
 
우체국을 지나고
빵집을 지나고
서점을 지나고
여운을 남기고 떠나는
기차의 긴 꼬리도 바라보며
꽃도 떠나보내고
잎도 떠나보내고
홀로 당당해지는 법을
몸으로 말해주는
가로수들에게 감사하며
햇살을 등에 업고
내 그림자를 밟으며
오늘을 걷는다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

내가 아플 때 나보다 더
아파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내가 외로울 때 언제나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그 사람은 나보다 더
단순하다
그 사람은 나보다 더
심오하다
그 사람은 나보다 더
정이 많다
그 사람은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난 그 사람을 영원히
좋아하고 싶다
딱 지금만큼만 영원히.

11월에

이삭 줍는 참새떼들의
요란한 날갯짓 소리에
11월이 눈을 뜨면
휑한 그림자 하나
고독의 늪에 빠진다

서늘한 등 뒤로
인생의 쓸쓸함이
살짝 드리우면
설익은 초록 단풍도
찬바람에 밟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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