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초록비

초록비가 운치 있게 내리고
첼로 선율이 잔잔히 스며들고

향으로 들이키는 차 한잔이 있어
오늘만큼은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오늘만큼은 젖어들고 싶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허물인지

열정이 남아있을 때
사랑이든 문학이든 무엇엔가
미치고 싶다

비 갠 후의 맑음과 싱그러움의
이중 협주곡이 가슴으로
숨 쉬게 한다

수런수런 한 초록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니
가슴에도 번져 드는
초록향기 같기만 하여라

오늘만큼은 커피 향보다
녹차향이 어울릴 것 같아서

한 모금씩 한 모금씩 음미한다
한 번가는 가을은 다시는
돌아올 순 없겠지만 그 향기와
그 머물던 숨결은 영원하리라

슬픔의 수액이 뚝뚝 꽃비로
떨어지는 어느 전설 같은
단풍 진 가을에

그대를 향하는 속절없는
그리움이 울고 있다

가을을 잊은 것처럼
그대를 잊는 것도 사소한 일이라
생각했건만 아름답게
사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리라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마음
아름답게 이별하는 건
더욱더 어려운 일이 리라

하루 이틀 사흘
한 해 끝을 향해서
뚜벅 거리지만
또 다른 시작일 거라는
간절함의 기도로
물구나무서기 하는 삶과
끌려가는 시간들

장어구이를 먹고
노래방에 가서
18번을 부르고
분위기에 취해서
행복해지는 사람들과
심드렁한 나지만

오랜만에 환하게 웃는
당신을 바라보며
다행이라고 끄덕이며
덩달아 웃는다.

 

집에 무엇이 있길래 퇴근시간만
되면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만으로 행복해지며
긴 한숨을 돌리는 걸까

휴식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
훈훈한 온기가 있는 안식처

기다려주는 가족이라는
따스한 존재들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꿈꾸며

그렇게 그렇게 견디며
살아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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