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가을비

 

 

마지막 사랑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붉게 불태우고는
미련 없이 훌훌 떠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다
알싸한 비바람에
고단했던 삶들도
후드득 떨어진다

가을이 내게도
손 내밀까 두려워
그림자 속으로 숨는다


매일 당신과 함께
오고 가는 그 길에
종일 가을비가 내리고

건너편 커피숍에
찻잔을 마주하고
창 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두 여인의
여유로움이 부럽다

이팝나무 초록잎에도
그 아래 듬성듬성 난 풀잎에도
촘촘히 둘러싼 담쟁이덩굴에도
촉촉이 스며드는 투명한 물빛들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도
갈 곳을 잃은 채 이리저리

흩날리는

그걸 바라보다가
또 하루가 진다.

 

 

 

겨울비 빗장 문에
촉촉이 내려앉는
아침이 오면

문 앞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낯익은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우산을 나란히 쓰고
도란도란 웃음꽃 피우며
걸었던 등하굣길이

내겐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 여행길인데

우산이 없어서
비 오는 날이면
얻어서 써야 하는

그녀에게는 배고픈
슬픈 기억이었다는 것을

그녀가 떠난 후에야
눈물로 알게 되었다

낙엽 지는 거리를 쓸쓸히
지나노라면 어떤 무너짐에도
의연한 나무처럼 그렇게
꼿꼿하게 살다

지고 싶어 진다.

삐져나오는 한숨에도
흔들리는 인간적이라고
이름 붙인 몹쓸 여림이란
얼마나 볼품없어 보이게 하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지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그래도 따스함이라고
변명을 해본다.

오랜만에 마주한 고독한
나와의 만남은 떠날 때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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