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손가락 하나가
다쳐서 불편해 보니

손가락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얼마나 손가락이
하는 일이 많은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몸의 일부분으로
내게로 와준
이쁜 손가락아

그동안 고마웠고
고통을 주어서
미안하구나

이제는 아껴주며
소중하게 보듬어줄게

덕분에 몸의 치유와
마음의 치유까지
하게 되니 아픔이 주는
인생의 가르침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병원에서 보내는
명절은 씁쓸하다

금릉공원 앞까지
나와서 기다리실
아버님을 생각하니

찾아뵙지 못하는
마음이 무겁다

똑똑 혈관 속으로
스며드는 수액의

서늘한 기운은
마음의 안정을 주고

누군가에겐 생명의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되리라

 

미련

엄동설한에도 꽃이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는 걸
삶이 보여준다

보내기 싫은
뒷모습 하나

자글자글 주름지도록
놓지 못하는 것도
등 터진 미련이라고

아파트 모서리에
비스듬히 부서지는

오후 햇살의
은유 속에서

운명의 여신이
자박자박
기억을 나눈다

내 인생아

인생의 반 바퀴는
젊음을 자랑하며

팔딱이는 몸뚱이만
믿고 달려왔노라

헐떡거리며 또다시
행진곡은 울려 퍼지는데

남은 인생의 반 바퀴는
무엇을 의지하며 가야 하나

주위를 돌아보니
언제나 잡을 수 있는
정겨운 손 하나 있었구나

눈물 나게 고맙구려
외롭지 않을 내 인생아

하얀 여백 위를
기어 다니는 굼벵이
한 마리는 불안하다

멈춰버린 고장 난
시계추 위에서

뒤엉켜 버린 자유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언제쯤 헤어날 수 있을지

하루해는 이렇게 또
저물어가는데

허무의 껍질만
손톱으로 긁적거린다.

 

애착

물건이나 사람이나
내 것이라고 생각이 들면

얻을 때만큼이나
버릴 때도 쉽지가 않다

버릴만해서 버리는
것이라도 그동안 나에게
기쁨을 주었던

순간들이 떠올라
버릴 수가 없어서

다시 넣어두었다가
다시 꺼내놓았다가를

여러 번 반복해서야
결국 버리게 된다

처음 샀을 때의 기쁨과
함께 행복했던 순간까지
버리게 되는 것이기에


목신의 오후의
나른함과 권태를

머그컵에 그득한
커피 한잔으로 달랜다

샛 털 같은 구름이
은은하게도 하늘을
수놓았다

그위를 하염없이
나는 이름 모를

새떼들의 비상이
자유로움이 부럽다

봄빛이 무르익어가는
3월 중순은 너무 고와서

무료한 일상을
추스르기가 버겁다


톡톡 터지는 아픔
잘도 이겨내더니

바람 한송이 불어오니
꽃 트임 주춤거린다

나직이 나직이
꽃으로 피어나시어

들녘에다 소담스러운
향기 그득 품어내시게

당신이 초록으로 오시든
당신이 꽃잎으로 오시든

우리에게 당신은
기쁨의 너울입니다
행복의 너울입니다


평범한 말

살아가다 보면 평범한
말들이 가끔은 어떤 말보다
진한 감동을 줄 때가 있다

잘 지내니 별일 없지
흔하게 듣고 흔하게
하는 말인데

눈물 나도록 고마워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소박하고 평범함 속에
배려나 온정이

남루한 우리 일상을
특별함으로 느껴지게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