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구들장에 다리를
쭈욱 펴고 지친
등짝을 기댄다
파닥거리던 푸른 숨결은
천천히 조신해진다
막연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너덜너덜해질 때
신뢰마저 고통으로
가슴에 가시로 박힌다
이게 아닌데
가파른 비탈길이구나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하는 꼴이라니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새끼손가락을 살짝
다쳤을 뿐인데도
하루가 불편하다
머리를 감는 것도
설거지를 하는 것도
신경이 자꾸 아픈
새끼손가락에 머물고
마음까지 살짝 불편해진다
우리 몸은 사소하게
대접해야 할 부분은
없는 것 같다
다쳐보니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새살도 솔솔 돋듯이
내 사랑도 솔솔 돋아난다
그것이 사랑이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너무 편해서 좋았습니다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자꾸만 웃게 되는데
그것도 사랑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나도 몰랐던 감정을
타인들이 먼저
눈치챘나 봅니다
사랑은 감출 수도
감추어지는 것도
아닌가 봅니다
비 갠 후의 세상
세상이 방금 샤워하고
나온 것 같은 맑음이 좋다
먼산 숲 속 나무들의
이파리 하나하나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투명하게 전해져 온다
키 작은 가로수
삼색 팬지들도
하늘거리며 기분 좋게
사색에 잠기고
이유 없이 덩달아
맑은 사람이 된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오늘이
무지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