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운명

나는 당신의 찻잔
당신은 나의 찻잔 받침대

언제나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줍니다

바람에 흔들릴 때도
가만히 고요해지기만을
차분히 기다려줍니다

당신의 사랑이 있어서
고운 잔의 맑은 향기로
존재할 수가 있답니다

가끔은 화려한 받침대를
꿈꿀 때도 있지만

나를 귀히 여기면서
가장 잘 어우러지는 건

당신뿐이라는 걸
운명적으로 느낍니다


이어달리기로 피었던
백일홍들이 이제는

피어났던 순서대로
질서 있게 사라지고

가로수 잎들도 하나씩
곱게 물들어간다

신의 은총으로
내려주는 빗방울이

이방인이 되어
대지 위를 두드리고

닫혀 있던 감성들이
초록 위로 올라온다

순백의 여린 순정으로
피어난 코스모스도

기다림으로 목이 메어
모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울고 있는가


가을비가 그리움처럼
외로운 이들 가슴속에
잔잔히 스며든다

가을비가 영원한
어머니의 사랑처럼

만날 수 없는 자식들을 향한

애틋한 온기로 잔잔히
적셔준다

오늘은 종일
내려줬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게 서럽지 않게
빗소리 듣고 싶다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울고 있다 외로운 걸까

낙엽 지는 소리가
휴일이 가는 소리가
서러운 걸까

시월의 끝자락 끄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 없이 평화롭다
잔잔한 음률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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