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분신들

 


어릴 적엔 꿈도 많았다
그중에 하나가 아파트에
살아보는 거였다

처음 아파트에 입주하던 날
가슴이 벅차서 잠까지 설쳤던
기억이 난다

꿈은 꿀 때가 아름답지
현실로 이루어지면
별거 아니었구나 한다

엘리베이터에 낯선 남자랑
단둘이 타면 어쩌나
여전히 염려가 되고

다른 층에 잘못 내려서
다른 집으로 들어가는
실수를 할까 신경도 쓰인다

잠옷 차림으로 쓰레기를
버리려고 내려오면
아는 얼굴이라도 만날까 봐
조바심이 난다

베란다에 이쁜 화분을
하나둘씩 늘려가는
재미도 솔솔 하다

아침이면 커다란 창에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출타해서 돌아올 때면
우리 집엔 불이 꺼져있어도
모자이크로 반짝이는 불빛들이
마음까지 따스하게 한다

아파트 주위론 초록 정원들이
마음을 순화시켜주기도 한다

빗소리가 너무 좋아서
잠들기 아깝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세상을 적셔주는
비가 너무 고맙다

천둥소리에 아파트가
놀라서 흔들린다

내 가슴도 새가슴 되었다

아파트 정원에 이사 온 날
심어둔 우리 아기단풍도
초록 이파리들이 쭉쭉
기지개를 켜겠다

처음엔 적응 못해서
골골하더니 이젠
제법 나무 꼴을 하고 있다

 

 

나 때문에 손을 다쳐서
피를 흘리면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속 깊은 당신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도
환하게 미소 짓는 따스한 당신

그런 마음의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차라리 화를 내면 마음이 편할 텐데
그렇게 웃으니 할 말이 없네요

천사 같은 당신이 내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합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때가 되면 피고 때가 되면 지고
그 꽃은 그랬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그 꽃이
가장 이쁘게 빛났던 순간도
외로움에 숨이 멎던 순간도

가장 낮은 곳으로
눈빛을 주지 못했던 이유다


소중한 분신들

철 지난 옷들을 차곡차곡

정리한다
옷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로

다가선다

처음 내게로 왔을 때의 기쁨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처럼

입을수록 편해져서 자주 손이 가고
마음이 가서

많이 낡아진 만큼 나에게 편안함을
선사했던 옷들도

아끼다가 제대로 빛도 못 보고
작아져 버린 옷들도

나에겐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분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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