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은 물들어간다
산들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구절초를 춤추게 하고
억새풀을 흔들어 댑니다
산속에는 갈빛이 여기저기서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산속에는 솔향기가 그윽하게
심신을 안정시켜 줍니다
가을이 곱게 물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들판엔 벼들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합니다
감나무에는 감들이 선홍빛으로
이쁘게 익어갑니다
밤나무에는 밤송이들이 탐스럽게
속살을 드러내며 미소 짓습니다
9월은 소리 없이 깊어갑니다
초가을은 소리 없이 짙어갑니다
귀뚜라미도 잠든 가을밤은
고즈넉하고 외롭습니다
잠 못 이룬 영혼들이
허공에 둥둥 떠돌아다닙니다
기댈 곳을 찾아서
위로받을 곳을 찾아서
선율 속에 숨었다가
커피 향속에 숨었다가
반쯤 내려놓은 블라인드 뒤에
얼른 숨어 봅니다
폭주족들의 요란한 굉음소리가
적막을 깨웁니다
남들이 잠들어 있는 밤에
깨어 있다는 사실이 눈물 납니다
깨어서 이루지도 못할 꿈을 꿉니다
꿈이 현실이 못되더라도
지금은 행복합니다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가을 속으로 데려가 준다기에
가을향을 느끼게 해 준다기에
기다림도 향이 물씬 납니다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언제나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언제나 안식과 위안을
주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만납니다
좋은 음악 속에서
맑은 글 속에서
같은 느낌으로
공감대를 이루며
느낌표를 찍어갈 때
나이 듦이 서럽지만은
않습니다
누군가를 바라봅니다
늘 같은 눈높이에서
맑은 감성 그대로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