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여백위 굼벵이
하얀 여백 위를
기어 다니는 굼벵이
한 마리는 불안하다
멈춰버린 고장 난 시계추
위에서 뒤엉켜 버린 자유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언제쯤 헤어날 수 있을지
하루해는 이렇게 또 저물어가는데
허무의 껍질만 손톱으로
긁적거린다
하루하루 허리가 힘없이
휘어지면서
길 위의 여정을 묵묵히
접는다
첫 마음
첫 마음을 안고 희망차게
새 커튼을 활짝 열어봅니다
늘 맞이하는 아침의 햇살도
처음 맞는 것 같은
눈부심에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숨을 쉬면서
내발로 튼튼히 설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한 살 더 먹고 보니
새삼 느껴집니다
원대한 꿈을 펼쳐나가기보단
내 안의 나를 사랑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살뜰한 정을 베풀며
따스하고 정겨운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푸른 청솔가지를 흔들어대던
바람도 고요 속으로 잠들어
버리고
청청한 오늘을 꿈꾸던 소망도
너풀너풀 영혼을 저울질한다
하루는 그렇게 마지막 술잔을
어둠 속에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