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14번째 처서
하루의 빈 들녘엔
새벽바람이 문지방을
넘나들며 시작된다
여름 한나절엔
세상을 초월한 눈으로
허공에 몸을 기대는
내가 있고
화려한 행렬의
백일홍의 삶도 있다
눈 끝의 신선함에서
어진 마음이 일렁인다
여러 개의 표정들이
두루두루 평화롭기를
기도하며 보내보련다
아직도 늦더위는
기승을 부리는데
입추도 지났는데
절기상으로는 오늘이
여름의 끝날인가
가을과 여름의
아름다운 연결고리
바람결에도 문득문득
전해지는 잔잔한
가을의 향기가
숨 막히게 할 것이고
이제는 늦더위가
활개를 치더라도
여유롭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가을은 내게 언제나
옛사랑의 그림자로
곱게 드리운다
계절의 창가
향이 맑은 차 한잔
음미하노라면
숨결 고운 여인이 된다
여름 끝자락에 젖어 마음이
고조곤이 한가롭다
바람결로 전해져 오는
반가운 향기에
사무치는 그리움이 가슴에 어려
꽃잎을 흔들고 추억을 흔든다
계절의 창가에서 상한 마음 하나
만지작 거린다
내 몫의 땀방울
풀 숲에 참새떼들의
결 고운 합창소리
울려 퍼지고
덩달아 나의 하루도
결이 고와지려 합니다
건조한 날에도
아름다운 꽃들은
소리 없이 앞다투어
아픔으로 피고 지며
자기 소명을
묵묵히 해나갑니다
나 또한 차분히
내 몫의 땀방울을
아낌없이 흘리며
하루를 보내렵니다
처마 밑에 찾아든
불청객 벌들
어느 틈엔가 밀랍으로
육각형 꿀방을
촘촘히 치밀하게도
잘도 지었다
벌집은 자연의 페니실린이다
세균도 침범할 수 없게
청결하게 꾸며졌다
한 마리씩 출동하여
꿀과 먹이를 물어온다
벌집을 헐어버리려고
궁리하는 걸 알고나 있을까
쏘일까 봐 피해 다닌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