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고추잠자리 하나
내 가슴에 소망의 홀씨
하나 뿌리고
시나브로 사라졌다
뭇사람들에게 가을을
고운 색으로 물들여
전하라는 암시인가
잡아두려고 손 내밀었던
그 손끝이 탐욕이었나
나만 보려고 하는 소유욕이었나
가을이 내 것 일순 없는데
가을이 나만을 위해
존재할리 없는데
가끔 우리는 많은 것에서
착각을 하고 산다
놓음으로 또 다른 얻음을 배운다
조금조금씩 다른 빛깔과 무게로
다가서는 다른 오늘과의 만남이
기분 좋은 운율에 젖게 한다
샤콘느와 살짝 우울톤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감상의 늪은 언제나 설렘과
알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을 자아낸다
매일매일 다른 빛깔의 나와
만나는 일은 내게도
기대되는 일이다
글빛 속의 나는 나에게도
정감 있고 매력적이다
현실을 심미안으로 보게 하는
신비함을 주기도 하고
남들이 못 보고 못 느끼는
잔잔한 감동들도 버리지 않게 한다
잔물결로 정겹게 스며들고 싶다
나를 아는 이에게
나를 모르는 이에게도
조금은 위로와 벗이 된다면
글 쓰는 기쁨이 될 것 같다
철이른 나팔꽃들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일찍 찾아왔는가
태양이 부끄러워 살며시 왔다가
살며시 가는 인생이여
바람둥이라 마음 둘 곳이
그리도 없더이까
그래도 너무 고마워 나도 덩달아
똬리를 왼쪽으로 틀어본다네
그대의 정인이 되어 피어있는
날까지 곱게 마음 펼치리라
그대의 닮은꼴들이 제철에
찾아올 때 그대 인양하고
고운 눈빛으로 살갑게 맞이하리라
글라디올러스
화려하고 청초한 꽃 글라디올러스는
왜 향기가 없을까
아름답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은
눈길은 쉽게 가나 마음이 오래
머물기엔 부족함이 없잖아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 신도 질투를
하신 걸까
빼어난 자태보단 고운 향기를
더 오래도록 못 잊고 가슴에
품어두는 게 아닐까 싶다.